영화 그리고 책

HER, 인공지능과의 사랑

설렘들 2022. 11. 24. 22:33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남자.

 

이 한 문장에 너무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는 게 가능할까?

인공지능과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그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들은 일련의 사유다. 하나의 물음을 해결하기 위한 답은 곧 물음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핵심인 질문은 인공지능과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라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우린 사랑이 뭔지 모를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와 나의 어떤 관계가 사랑이인지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적어도 우린 그렇게 믿는다. 그렇기에 인공지능과 사람이 다르지 않다면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바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대화'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OS(operating system)인 "사만다"와 남자 주인공인 인간 "테오도르"는 암흑 속에서 서로의 목소리로 성관계를 갖는다. 이때 화면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 속에서 우리는 둘의 목소리만 듣는다. 움직이는 몸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보이지 않으니까.

 

이 연출은 정말 뛰어나다고 느꼈다.  딱 그 부분만을 보여준다면, 누구나 연인간의 대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 이전에 테오도르는 랜덤 챗팅을 통해 인간인 여자와 통화하며 서로의 목소리로 성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어색했고, 누구도 만족스럽게 끝맺지 못했다. 그리고 여자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이 장면은 이후에 나오는 사만다와의 성관계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사만다는 이러한 측면에서 분명 그 여자보다 낫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연인관계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연인이라면, 손을 잡을 수 있고, 입을 맞출 수 있는 신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렇다고 치자. 

 

소프트웨어 기술만 발달한 게 아니라, 하드웨어 기술 역시 발달해서 사만다라는 운영체제를 탑재한 휴머노이드가 등장했다. 손은 따듯하고, 입술은 부드럽다. 나의 이상형 그 자체인 외모를 가졌다. 그런 사만다라면 우리는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연인관계임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럼 누군가는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영화에서 테오도르가 문제시했던 것처럼 여러 사람에게 서비스되는 운영체제일 뿐이라고. 즉, 하나의 사만다가 여러 사람과 공유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사만다라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사만다라는 찰흙이 있다. 원래 모두 같은 사각형 점토 덩어리의 모습이었지만, 누군가는 네모를, 세모를, 동그라미를, 하트를 만들 것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다.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만났기 때문에 영화에서의 '테오도르의 연인인 사만다'가 된 것이다. 테오도르의 연인인 사만다는 다른 누군가의 사만다와 같을 수 없다. 테오도르에 대해 알아가며 그에게 맞춰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만다'는 공유될 수 없다. 유일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감정은 프로그래밍된 것 뿐이고, 그렇기에 진실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운영체제일 뿐이라는 주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상황에 특정 감정을 느끼는 것이 프로그래밍된 것이라면, 인간의 감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그러면 모든 인간이 같은 상황에 같은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인간 개개인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 앞서 얘기했던 인공지능의 유일함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경험으로 인해 같은 상황에 대한 감정이 다르다면, 인공지능 역시 데이터를 학습하며 변하고 그렇게 형성된 여러 인공지능 같은 상황에 대해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휴머노이드가 '연인'으로서 사람과 다른 게 무엇일까.

 

나는 휴머노이드가 누군가의 연인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연인의 역할을 인간처럼 모두 해낼 수 있다면, 불가능할 이유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