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여러 논문을 엮어 낸 형식이다. 그래서 각 장의 문체와 구성이 매끄럽지 못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 든다. 창조신화의 요소에 대해서는 참고할 만 하다.
창조신화의 핵심적 요소는 세 가지로, 우주 창조, 신 창조, 인간 창조이다. 이 세 가지 신화소가 일관되게 전세계 신화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셋 가운데 특정한 신화소가 먼저 제시되고, 나머지 신화소가 뒤따를 수 있기도 하고, 이 가운데 하나만 외따로이 떨어져서 창조신화를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창조가 있고, 그 다음으로 우주 창조와 신 창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핵심적 요소와 별개로 신화에는 세계멸망신화, 홍수신화, 남매혼신화, 인세차지경쟁신화 등의 신화소도 존재한다. 핵심적 요소의 신화를 협의의 창조신화로, 이외의 요소를 광의의 창조신화로 양분해서 다루기도 한다.
이집트의 창조 신화 중, 하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히브리어‘온’)의 창조신화는 ‘눈(Nun)’이라는 신으로부터 시작된다. 태초에 흑암 속에 잠잠하고 무한한 바다에서 ‘아툼’이 솟아 올라 천지를 창조함으로써 헬리오폴리스의 최고신으로 자리잡는다. 그는 자위행위 혹은 침을 뱉어냄으로써 슈(Shu)와 테프눗트(Tefnut)를 탄생시켰다. 둘은 게브(Geb)와 눗트(Nut)를 탄생시키고, 그 둘은 오시리스, 셋트, 이시스, 네프티스를 낳았다. 슈와 테프눗트는 창조의 첫 물질인 공기와 습기를 상징하며 게브와 눗트는 구체적인 피조물인 땅과 하늘을 상징한다. 눈을 제외한 이들이 헬리오필리스의 구신계(九神系)이다. BC 3,000년경 상이집트 출신의 나르메르(Narmer)는 하이집트를 점령하고 제1왕조를 건설했다. 수도를 상·하이집트의 경계지점인 멤피스에 도읍을 정하며 멤피스 중심적인 신학적 정립이 요구됐다. 샤바카 석비에는 이러한 배경에서 설립된 멤피스 신학에서 ‘프타’는 아버지로서 프타-눈이며, 어머니로서 프타-나우넷트이다. 그는 입의 말씀을 통해서 신들을 구체화시켰다. 헤르모폴리스는 남신과 여신으로 짝을 이루는 여덟 신 계보, 팔신계(Ogdoad)가 발달했다. 눈과 나우넷트는 혼돈의 물을, 헤와 헤헷트는 창공을, 켁크와 케켓트는 어둠을, 아문과 아마우넷트는 보이지 않음을 상징한다.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는 마르둑 신이 바빌론이라는 도시의 신에서 출발해 메소포타미아 전체의 최고신이 되는 등극과정을 보여준다. 태초에 아버지인 담수 압수(Apsu), 어머니인 해수 티아맛(Tiamat)이 엉켜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침적토인 라흐무(Lahmu)와 라하무(Lahamu)가 생겨난다. 그 후 하늘의 둥근 가장자리인 안샤르(Anshar)와 키샤르(Kishar)가 생겼다. 둘로부터 하늘의 신인 아누(Anu)가 나오고, 그로부터 누딤무드(Nudimmud)가 나왔다. 누딤무드는 수메르어로 엔키(Enki)와 아카드어로는 에아(Ea)라고 한다. 그는 흐르는 물, 강, 늪지의 신이며 지혜의 신이다. 그로부터 마르둑(Marduk)이 태어났다. 시간이 지나 옛신과 새신 간의 갈등이 일어난다. 압수는 티아맛의 반대에도 싸우고자 하였고, 에아는 주문을 걸어 압수를 살해한다. 이후 티아맛은 새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두 번째 남편인 킹구(Kingu)를 선택하고, 11괴물(무쉬마후, 우숨갈루, 바슈무, 무슈후슈, 라하무, 우갈루, 우리딤무, 기르타블룰루, 쿠룰루, 쿠샤리쿠)을 낳는다. 이에 새신들은 마르둑에게 티아맛과 싸워줄 것을 부탁했고, 마르둑은 자신을 영구적인 왕으로 받들고, 그가 거주할 신전을 지을 것을 조건으로 했다. 마르둑은 전투로 티아맛을 죽이고, 그녀의 몸으로 우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에아는 킹구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
-참고자료-
『세계의 창조신화』. 신화아카데미.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