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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갈 생각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맘에 안 들어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정확히 하자면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자체를 논하기보다 그가 제시한 하나의 명제를 논하고자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만족한 돼지이기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인 편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이기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인 편이 더 낫다."

 

  존 스튜어트 밀 이전의 공리주의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였다. 그의 공리주의는 쾌락을 유일한 선으로 보고, 고통을 유일한 악으로 보았다. 이것은 쾌락의 극대화와 고통의 최소화라는 단 하나의 원리만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간단하다. 이 원리에 따르면 무절제한 쾌락을 추구하는 한량의 삶이 절제하며 지식을 추구하는 현자의 삶보다 선한 삶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벤담의 공리주의는 돼지의 철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러한 비판을 방어해내고자 쾌락의 질을 구분하였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성, 휴식, 감각적 쾌락을 저급 쾌락으로 고급문화, 과학적 지식, 지성, 창조성을 고급쾌락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고급쾌락의 추구를 더욱 선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는 경험주의자였기에 주장의 근거를 경험에 두었는데, 두 가지 쾌락을 모두 경험한 사람은 고급쾌락의 추구를 더욱 선호한다는 것에 근거하였다. 

 

  인간이 고급쾌락을 추구한다는 그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오직 고급쾌락만을 내세우는 그의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인간의 욕구는 단계적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은 이러한 욕구의 단계를 보여준다.

  매슬로는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위계상 다음 단계에 있는 다른 욕구가 나타나며, 이를 충족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가장 먼저 요구되는 욕구는 다음 단계에서 달성하려는 욕구보다 강하고 그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만 다음 단계의 욕구로 전이된다고 주장했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을 참고했을 때, 존 스트어튜 밀의 근거가 편향되었음을 문제시할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저급쾌락과 고급쾌락을 모두 경험한 사람에게 선호하는 쾌락을 물었다. 그 사람은 저급쾌락을 만족하였기에 그의 욕구는 다음 단계의 욕구로 전이되었을 것이고, 그는 고급쾌락을 선호하는 상태였을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기본적인 욕구도 만족하지 못한 상태였다면 그의 선택은 달랐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견이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의 반론이 될 수는 없다. 욕구단계설은 욕구의 각 단계마다 얻을 수 있는 쾌락이 한정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더 많은 쾌락을 위해서는 고급쾌락인 자아실현까지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의 명제의 반론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만족한 돼지이기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인 편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이기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인 편이 더 낫다."

 

  만족한 돼지여야 불만족한 인간이 될 수 있고, 만족한 바보여야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다.

 

  돼지와 바보라는 표현이 받아들이기 불편할 수는 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고급문화를 즐기고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도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킨 후에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